사이 | 콤플렉스 라이터
ME-INFO 나의 정보
작가이자 몽상가입니다. 제가 가진 콤플렉스와 이유, 변명을 쓰기 시작해 지금은 복잡하게 얽힌 관계들을 이해하기 위해 작업을 합니다. 가끔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은 일들을 상상하며, 현실에서 구현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좋습니다. 누군가는 제가 너무 추상적으로 말한다고 합니다. 또 누군가는 제가 정확한 표현을 쓴다고도 해요. 그러니 그 사잇값의 언어를 구현할 수도 있을 테죠. 여전히 삶에서 사용할 수 있는 언어를 익혀가는 사람인 것 같아요. 상황에 따라, 상태에 따라, 대상에 따라 더 적합한 언어를 계속 찾는 중이죠.
두 권의 책을 썼어요. 첫 번째 책 <이유 없는 나는 없었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콤플렉스에 관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생각과 감정, 집착하는 것, 행동, 공포스러워하는 대상에 대해 쓰여 있죠. 콤플렉스를 직면하기 위해 하나씩 쓰기 시작하다 한 권의 책으로 완성하고 나니 그저 다양하고 복잡한 저라는 인간의 일부분이라는 걸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책 <내 몸에 왜 구멍이 있어요?>는 상황이나 대상에 따라 들쭉날쭉 등장했다 사라지는 제 안의 캐릭터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 혹은 실종사건을 전개하면서 인생에서 마주하는 문제들을 어떤 식으로 해결하는지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어요.
SPACE 공간환경
함께 사는 고양이 두 마리와 제 상태에 따라 사는 공간은 자주 바꾸는 편이에요. 얼마 전 햇살 공급이 시급하다고 느껴져서 작업 공간과 휴식 공간 모두 테라스로 빼두었어요. 점심 때가 다 돼서 햇살이 테라스로 내리쬐기 시작하면 작업 테이블에 앉아 작업을 하고, 늦은 오후 해가 저물어 갈 때 마지막 햇살을 받기 위해 편한 의자에 앉아 책을 읽거나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죠. 집 구조를 바꾸는 주기는 보통 2~3달에 한 번쯤인 거 같아요. 집안에 순환이 필요하다고 느껴지거나 고양이들과 저의 욕구가 변하는 시기기도 해요. 가만히 한 공간에 앉아 있는 걸 즐기는 편이 아니라 수시로 장소를 옮겨 다니는데요. 어떤 공간에 방문할지, 더 머물지 말지 결정할 때 생각보다 많은 요소를 고려하고 있다는 걸 알았죠. 단순히 커피가 맛있어서, 음악이 좋아서로 결정되진 않는 거 같아요. 그날그날의 욕구와 상태를 따르기도 하고요. 실은 한 공간에서 장시간 머무는 게 싫증나서인 거 같기도 하네요. 집에서도 가구 배치를 자주 바꾸고, 밖에서도 자리를 옮겨 다니며 작업하는 걸 선호하는 편입니다. 어쩌다 좋아하는 공간을 만나 지도에 표시를 잔뜩 해두었다가도 안 가는 곳이 수두룩하죠. 다시 방문했을 때 바뀐 공기, 미묘한 맛의 차이, 사장님의 말하는 투에서 달라졌다는 게 느껴지거든요. 공간이랑 관계를 맺고, 공간을 좋아하게 되는 것이 매우 단순한 것 같지만 들여다보면 많은 요소들이 뒤엉켜 결졍된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게 공간을 찾아다니고 애정하게 되는 이유기도 합니다.
PEOPLE 사람들
사람을 사랑하는 편은 아닙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사람 알레르기가 있지만, 관계 맺음에 관심이 있어 가끔은 인간 사회에서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은 일들을 상상하며 현실에서 구현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인간 개개인들이 가진 힘을 믿는 편이에요. 지극히 개인에게서 시작된 믿음일 수도 있어요. 종종 기분이 아주 가라앉고 무기력해지는데요. 그럴때면, 스스로를 끝까지 부정하며 포기한 것처럼 굴다 결국은 다시 방법을 찾아 일어나 움직입니다.
각자 가진 힘의 크기는 가늠할 수 없지만, 개개인에게 필요한 힘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믿어요. 믿을수록 더 강해지는 힘을요. 덕분에 자기다운 방식으로 빛나는 것 같아 사람을 바라보고 있을 때 흥미로울 때가 있습니다. 언젠가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애정할 수 있을까 생각해요. 우선, 스스로 그렇게 대하고 싶다는 욕망에서 부터 시작되었어요. 어느정도는 가능해졌다고 느껴요. 이 마음이 영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도 잊지 않으려고 해요. 바라는 건 그저 있는 그대로 관계 맺고 싶은 거예요.
LIFESTYLE 물건과 컨텐츠
빈티지한 느낌을 좋아해요. 새것의 반짝이는 아름다움도 물론 좋지만, 빛바랜 것들을 사랑하죠. 잘 관리되어 자연스레 늙어가는 것들을 좋아합니다. 옷도, 소품도, 가구도 사람의 손을 타고 자란 것들을 곁에 두고 싶어요. 온기가 오래오래 지속되어 천천히 식어갈 때 느껴지는 맛과 향의 변화도 좋아요. 의류 관리를 잘 하는 편은 아니라 합성 섬유가 섞인 옷을 많이 입었는데, 요즘은 보풀이 나거나 너무 매끄럽지 않더라도, 구김이 좀 가더라도 면이나 니트류에 더 손이 가요. 취향은 계속 변합니다. 취향이 아직 잡히지 않은 걸지도 모르겠네요. 내 취향은 이런 거야, 하고 오래오래 변함없이 깊게 파고들기보다 아직은 새로운 것에 관심을 두고 새로운 경험을 해보는 걸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음악도 그래요. 나는 재즈가 좋아, 하고 말하는 것보다 상황에 따라, 공간에 따라, 그날그날 나의 기분과 몸 상태에 따라, 일행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일을 할 건지 잠시 멍 때리며 휴식을 취할 건지, 식사할 건지에 따라 달라져요. 아프리카 음악도, 힙합도, 뉴에이지 음악도, 섲어적인 인디 밴드 음악도 좋거든요. 그러니 만약, 제게 구체적으로 좋아하는 작가나 가수의 이름, 작품의 이름을 묻는다면 대답을 들을 확률은 지극히 낮아요. 대부분 좋아하고 지나가고 또 다시 좋아하는 경우가 많아 기억의 공간에는 정확한 명칭 대신 감각만 남아있을 가능성이 클 테니까요.
반면 음식에 대한 고집은 있는 거 같네요. 커피라면 모두 좋아, 는 아니거든요. 어릴 때부터 형성된 입맛이란 게 있어서 제 입에 맛있는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합니다. 음식 조합, 궁합도 중요하게 생각해요. 마지막 혀끝에 남길 맛도 신중하게 선택하곤 하죠. 상대가 음식을 권하는 건 감사히 생각하지만, 종종 마지막 혀끝에 남길 맛에 간섭받는 다고 느낄 때도 있어요. 마지막까지 남겨둔 음식은 싫어서라기보다 오래오래 음미하고 싶은 맛일 확률이 높아요.
영화는 영화관에서 보는 걸 좋아해요. 얼마 전 바쁘단 핑계로 두 달 가까이 영화관을 못 가다 보고 싶던 영화 상영이 끝나기 전에 보러간 적이 있어요. 추락의 해부였는데 영화관에 앉아 상영이 시작되는 순간 가슴이 웅장해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아마 오래간만에 열심히 살다 시간내어 간 영화관이라 그랬을지도 모르겠네요. 아무튼 이 시간에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감격스러운 거 있죠. 물론, 영화 그 자체도 정말 좋았습니다. 와하하 웃을 수 있는 영화도 좋지만, 영화를 통해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는 것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도 정말 좋아해요. 그리고 누군가와 이런 얘기를 나눌 수 있다면 더더욱 바랄 게 없죠.
누군가의 생각을 엿보는 걸 좋아해서 인터뷰를 보거나 읽는 것도 좋아해요. 책에 담긴 작가의 생각이나 시선, 삶을 꺼내보는 것도 좋아요. 속에 있는 걸 꺼내 표현하며 산다는 건 꽤 근사한 일인 거 같아요. 음악이든, 글이든, 영상이든, 뭐든 말이죠.
문득 누군가의 작업 과정을 바라보는 것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결과물만 있는 것보단 과정을 그린 스케치나 영상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 중 그 사람의 사고 과정, 몸으로 꺼내지는 행위들이 더 생생하게 느껴지거든요.
어릴 때 만족스럽지 않은 학습 환경에서 살아서인지 한동안은 교육 시스템에 꽃혀있었어요.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을까, 좋은 교육은 어떤 걸까, 어떻게 하면 계속 배우며 멋있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지금보다 덜 파괴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끼리 모여 전쟁과 착취 없이 살 수 있을까, 하고 막막한 고민을 한 적이 있었죠. 물론, 모든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지진 않았어요. 나라는 개인에 빠져 세상을 못 보거나 바쁘단 핑계로 외면하는 걸 택한 적이 많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이라는 영역을 특정한 사람들에게 맡기기 보단 개개인이 할 수 있는 만큼 만들어보면 좋겠단 생각을 합니다. 사회가 더 유연해지면 좋겠어요. 이건 네가 할 일, 이건 내가 할 일, 하고 단정 짓기 전에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을 다시 이야기 나누어보면 좋겠어요. 누군가는 어디선가 하고 있겠죠. 저 또한 그런 누군가가 되어 어딘가에서 여러분들과 이야기나누고 싶은가 봐요.
제가 바라는 건 스스로, 그리고 상대방을 쓸모로 규정짓지 않길 바라요. 쓸모로 규정될 땐 편견 없이 사랑할 수 없다는 걸 매번 느끼거든요. 처음 한 이야기처럼 저는 몽상가일지도 모릅니다. 이 사회가 요구하는 구성원은 아닐 수도 있죠. 그래서 저는 더 꿈꾸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돈이 행복을 가져다 줄 거라는 말을 믿지는 않아요. 더더욱 다른 방식으로 느끼며 삶을 살아보고 싶습니다.
이야기를 만들고, 글그림을 그립니다. 표현하는 일을 대체로 좋아하는 것 같아요. 특히 몸을 같이 써서 나오는 작업을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 소극적으로 변한다는 걸 느껴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제대로 정의 내리려면 망설여져요. 어떤 것도 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이 부분에서 더 유연해지고 싶다는 마음도 있어요. 스스로 일을 정의하고, 행위하고, 표현하며 과정과 결과물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이길 바라는 거예요.
세상이 더 다양해졌으면, 그리고 서로 더 다정해졌으면 하고 꿈꿔요. 저부터 다정하고 다양한 사람이 되기 위한 즐거운 방식을 찾고 있습니다. 누군가 제게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한데?” 하고 물으면, 단순하게 대답해 줄 자신은 있습니다. 다정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늘어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늘려나가면 되지 않겠냐고 말이죠.
어릴 때 상상하던 어른이 된저의 모습과 현재 모습은 상당히 다릅니다. 꽤 근사한 삶을 살 줄 알았는데 현실은 여전히 어릴 때 모습을 꾹꾹 눌러 담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명확한 건 어디에서도 삶의 정답을 찾을 수 없다는 거예요. 이제는 나답게 사는 게 가장 어른스러운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답게 살고 싶은 어른들이 있다면, 함께 다정하고 다양한 사회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능숙할 필요는 없을 거예요. 쌓이는 시간의 힘을 믿게 되었으니까요.